2018/07/02 01:37

Are we smart enough to know how smart animals are? - Frans de Waal (한국어판: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독서



제 블로그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제가 눈치 빠르고 고집도 센 반려견과 함께 살다 보니 특히 관심이 가는 주제여서 고른 책입니다. 중간쯤 읽었을 때 바쁜 일이 연달아 생겨 한참을 쉬었다가, 지난 며칠 다른 주에 다녀오느라 비행기 타는 동안 드디어 마무리했습니다.

우리는 과연 동물들이 얼마나 영리한지 이해할 만큼 영리한가? 이렇게 제목만 놓고 보면 저자가 인간이나 동물이나 오십보백보라는 식의 상당히 극단적인 주장을 펼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동안 많은 동물학자들이 냉철하고 논리적인 접근을 통해 인간과 다른 동물의 공통점 및 차이점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심히 편향적이고 비과학적인 실험을 동원해서 '이것은 오직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인.간.다.운. 특성'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낸 사례가 많음을 책 전체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목에서는 일부러 smart를 반복해서 다소 도발적으로 들리는 효과가 있는데, 책의 핵심을 있는 그대로 요약하면 34페이지에 있는 것처럼 "Are we open-minded enough to assume that other species have a mental life? Are we creative enough to investigate it? Can we tease apart the roles of attention, motivation, and cognition?"이 되겠습니다.

놀라운 수준의 기억력, 여러 정보를 조합하여 추론하는 능력, 다른 개체의 지식을 추측하고 행동을 예측하는 능력, 다른 개체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필요성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능력, 향후 협조의 필요성이나 더 큰 이익을 위해 당장의 욕구를 억제하는 능력 등, 다양한 동물의 다양한 정신 세계에 대해 풍부한 사례가 소개되어 있어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매우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 눈길을 끈 것은 역시 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진행되어온 동물의 인지 능력 측정 실험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도 익히 봐왔듯이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인간에게는 사용하지 않을 극도의 스트레스(결사적으로 헤엄쳐야 빠져나올 수 있는 수조에 쥐를 반복적으로 빠트려 기억력을 실험한다든지, 전류가 흐르는 통로 건너편에 먹이나 짝짓기 상대, 심지어는 새끼를 두고 동물들이 어떤 상황에서 전기 쇼크의 두려움을 무릅쓰는지 실험하는 등) 또는 굶주림(아직도 많은 실험실에서는 동물들의 체중을 일반적 수준의 85%로 유지함으로써 먹이로 인한 동기 부여를 유지한다고 합니다)을 동원하고 있죠. 이는 윤리적으로도 문제지만, 그처럼 공포나 허기를 바탕으로 측정한 결과가 과연 인간의 능력과 비교하기에 합당한 것인지도 의문스럽습니다(35-36페이지).

또한 인간 유아와 어린 유인원의 인지 능력을 비교하는 각종 실험의 경우, 우선 실험에 활용되는 "놀이"가 인간에게만 익숙하고 흥미로울 뿐 유인원에게는 낯설거나 의미 없는 경우가 많으며, 게다가 인간 유아는 같은 종으로부터 친절한 설명을 듣고 든든한 심적 지원군인 부모가 바로 옆에 있어주는 데 비해(부모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이에게 미묘한 제스처 등을 통해 힌트를 주기도 하고요) 유인원 새끼는 그러한 도움 없이 차갑고 낯선 실험실이나 철창 건너편에서 아무런 관심도 없는 놀이를 강요받는 게 보통이고요(143-145페이지).

또다른 예로는, 보상(맛난 음식)을 얻기 위해 둘이 협동해야 하는 셋업에서 인간 아이들은 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서로 대화하며 소통할 수 있는 반면 유인원 새끼들은 서로 떨어진 두 개의 우리에 격리시키고 그 사이에 두 겹의 망까지 설치한 상황에서 실험을 진행한 사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192페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을 인간과 정확히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그러한 차이는 불가피하지 않느냐고 반론할 분들도 있을 텐데, 그렇기 때문에 위의 두 번째 요약 포인트("Are we creative enough to investigate it?")가 중요합니다. 이 책에서는 위와 같은 심각한 편향성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어떤 창의적인 방법이 동원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실험실뿐 아니라 자연 환경에서 해당 종을 관찰함으로써 그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못내 궁금한 건,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왜 아직도 일부(266페이지 이하에서 다른 동물학자의 표현을 빌어 "slayers"로 지칭합니다)에서는 인간 스스로의 우월함을 스스로에게 입증하지 못해 그토록 안달일까 하는 점입니다. 저자도 언급하듯, 인간과 다른 종이 둘 다 특정 인지 능력의 존재 가능성을 보이더라도 많은 경우 인간의 것이 더욱 복잡하고 시공간적 범위도 훨씬 넓다는 점이 명백한데, 왜 동물의 그러한 인지 능력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면서까지 인간과 동물의 비교를 불경시할까 하는 것이죠. 예상 가능하듯 268페이지 이하에서는 이들 중 일부가 아직도 진화론 자체를 못 견뎌한다고 적고 있는데(아무래도 종교 영향이 크겠죠),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낮은 자존감을 극복하려는 듯한 이 몸부림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여기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아는 분 계시면 덧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간은 신 바로 옆 1m 거리에 있고 다른 동물들은 100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제는 널리 알려진 침팬지 기억력 테스트(아래 동영상 링크합니다)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가까스로 내놓은 설명이 어떤 것인지는 이 책 119-121페이지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다소 아쉬운 점은, 전체적으로 제목 구분이 별로 없고 소설처럼 길게 풀어 설명하는 바람에 해당 분야에 박식하지 않은 저 같은 일반인이 읽기에는 구성이 좀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적절한 수준의 번호나 불릿을 활용했더라면 훨씬 이해하기 편했을 듯 해요. 또한, 대부분의 실험실 셋업이나 실험도구 구조를 글로만 읽으며 상상하려니 한계가 느껴지는데, 삽화나 사진이 좀 더 풍부하게 사용되었더라면 효과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덧글

  • 나녹 2018/07/02 08:29 #

    수화로 인간과 소통했던 고릴라 코코 같은 예도 있지요. 당장 우리 곁에 항상 있는 개들만 봐도 얼마나 영리한지...
  • trammondog 2018/07/02 11:51 #

    저도 브루노를 좀더 잘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주문했는데, 개에 관한 얘기는 별로 없었지만 다른 동물들의 놀라운 멘탈 세계와 과거 동물학의 치우친 시각에 대해 알게 되는 좋은 기회였어요.
  • trammondog 2018/07/04 04:58 #

    지금 찾아보니 코코가 2주 전에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네요..
  • 나녹 2018/07/05 02:33 #

    네 안타깝게도요. 때마침 그 부고를 보고 단 덧글이었습니다.
  • 명품추리닝 2018/07/03 20:51 #

    이미 한국어판이 나와있다는 사실이 가장 반갑네요.
    동물의 공감능력을 다양한 종에서 확인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아요.
  • trammondog 2018/07/03 22:49 #

    공감 능력 부분에서는 주로 유인원과 돌고래를 예로 들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많은 학자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동물을 오직 현재 자신의 이익 밖에 모르는 자극-반응 기계 정도로 여겨왔다는 게 가장 놀라웠어요.
  • trammondog 2018/07/04 04:55 #

    아 그리고 동물의 공감 능력과 관련해서 저자의 재밌는 TED 강연이 유툽에 있네요.
    설정 메뉴에 한글 자막도 있어요:
    https://youtu.be/GcJxRqTs5nk
  • 명품추리닝 2018/07/04 23:33 #

    감사합니다. TED 잘 봤어요. 원숭이의 평등실험은 책으로만 읽었는데 영상으로 확인하니 왜 이렇게 웃긴가요. ㅎㅎㅎ 종교 없이 도덕성을 발달시켜가는 동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그리고, 예전에 스페인 여행갔을 때 프라도 미술관에서 보쉬의 그림 직접 봤어요! 여러모로 흥미로운 강의 소개해주셔서 감사~
  • trammondog 2018/07/05 08:59 #

    저도 협동 및 평등 실험 모두 글로만 읽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영상으로 보니 확 실감이 났어요 (그런 점에서 멀티미디어 북이 더 활성화되어도 좋을 듯해요). 보쉬 그림은 이번에 처음 봤는데 오래 전 화가인데도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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